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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_단상_일상의 기록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by 자동차생각_모듈러설계 2019.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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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모교인 한양대의 인터넷 뉴스판에 실린 소개 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일본은 제조업분야에서 세계 최강을 자랑한다. 특히 도요타와 같은 자동차 산업에서 두곽을 나타낸다. 일본 제조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노즈쿠리(もの造り)를 알아야 한다. 모노즈쿠리는 일본어로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의미하는 ‘즈쿠리’가 합쳐진 말로 장인정신이 담긴 일본의 제조문화를 일컫는 단어다. 제조업은 우리나라에서도 핵심 산업의 한 부분으로 꼽힌다. 현대자동차 자동차산업연구소 경영연구팀 소속 박정규(기계공학과 91년 졸) 동문을 만나 우리나라 제조업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 들었다.

1,300여권의 장서를 기부하다

박 동문은 평소에 일본 산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양의 책을 샀다. 물론 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된다고 한다. 그는 2008년 그렇게 책장에 쌓인 책들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박 동문이 기부한 책은 총 1,309권이 됐다.

“일본의 산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있지만 산업구조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샀어요. 특히 일본 기업에 관한 책들을요. 그리고 책들을 읽다보니 연구 분야가 기계공학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사람이 평생 한 가지 길만 걸을 수는 없는 거에요. 자기가 무엇을 전공했다고 해서 평생 관련 업종에 종사하게 되진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전환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산업구조 분석에 대한 방향으로 전환하게 됐죠. 헌데 그러고 책장을 보니 일전에 사놓은 책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읽지도 않은 책들도 많구요. 전공책도 있고, 일본 관련 책들도 많습니다. 이런 가치있는 책들을 제 책장에만 보관 한다는게 아쉬웠어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도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트럭, 승용차, 오토바이, 자전거. 이 넷을 둘로 분류한다면 바퀴 수나 겉모습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키텍처 산업론에 입각하면 트럭과 자전거, 승용차와 오토바이로 구분할 수 있다. 겉모양과 관계없이 설계자의 입장으로 제품을 구별하는 것이 아키텍처 산업의 기본이다. 박 동문은 일본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다.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책 한권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한권을 꼽았다. ‘모노즈쿠리’가 그 책이다.

“모노즈쿠리라고 제가 번역한 책입니다. 기증품목에도 있는데요. 산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다룬 책입니다. 아키텍처 산업론을 주로 다뤘습니다. 설계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물건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요. 다시 말하면 산업을 보는 눈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제대로 산업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이공계 학생 뿐만 아니라 경제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좋은 책인데 한국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더라구요. 상당히 앞서가는 책입니다.”

박 동문은 학교 얘기를 하며 정태형(공학대·기계공학)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꼭 전해달라고 말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진로를 걱정 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스승이 정 교수다. 박 동문을 일본 유학길로 안내한 것도 정 교수의 도움이 컸다.

“갑작스레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일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무조건 다시 우리대학을 찾아갔습니다. 정태형 교수님이 교토대학 출신입니다. 사실 학부시절 정 교수님의 수업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어요. 일단 무작정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정 교수님께서도 무슨 생각이셨는지 그쪽 대학에 정말 말씀을 잘 해주셨어요. 제 삶의 방향을 바꾸는데 정말 큰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공학에서 경영으로 방향을 틀다

자동차 산업은 ‘기계공학의 꽃’이라 불린다. 2만 여개의 부품들이 완벽히 작동해야 제대로 된 자동차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박 동문은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 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동차에서 제조업의 숨은 매력을 찾았다. 그리고 기계공학에서 산업구조 분석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일본에서 많은 부분을 배워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아자동차에서 일할 때 일본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많았습니다. 일본에서 기계공학분야인 소음과 진동의 제어분야를 전공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조교수 생활을 했죠. 이때가 전환점이 됐습니다. 교수가 되면서 연구 분야를 내 의지대로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때 참 책들을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 ‘이런 책들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직접 번역하기도 했습니다.<모노즈쿠리>, <도요타식 화이트칼라 혁신>, <도요타 제품개발의 비밀> 등이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폭넓게 연구하는 것이 제 성격과 잘 맞았습니다. 제조업이라는 것이 여러 분야가 조합이 잘 돼야하는 산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책들도 많이 샀습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전공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박 동문은 지난 2006년 일본에서 7년여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LG전자를 거쳐 현재 현대자동차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경영연구팀의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오랜 시간동안 공부를 끝내고 다시 일선으로 돌아간 소감을 물었다.

“지금 있는 연구소는 자동차 산업 전반을 분석하는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생산과 개발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이론을 많이 다루게 됩니다. 하지만 실전은 달라요. 실무가 정말 중요합니다. 또 자신의 연구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학생 때는 자신한테 책임이 없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실험을 하나 하더라도 직접 발상을 떠올리고, 직접 실험해서 결과를 내야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난 2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는 제품결함으로 전격적인 소환수리제를 실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도요타의 위기로 보기도 한다. 최근 세계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한국차의 도약의 기회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박 동문은 도요타 사태를 냉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도요타에게 배울점이 많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환수리제 사태를 보고 도요타의 생산방식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보냅니다. 물론 소환수리제 사태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워낙 앞서가는 기업이기 때문이 이런 사태가 발생한 거에요. 후발주자는 1위 기업을 열심히 쫓으면 됩니다. 그러나 앞서있는 기업은 항상 새로운 것에 다가가고, 부딪혀야 합니다. 그런 시점에서 마찰이 발생한 것이지요.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요타가 위기라던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최근 우리차도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이 많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직 일본과 비교해서 몇 년의 차이가 난다고 봐야겠죠.”

제조업의 매력에 빠져라

연구 분야는 공학에서 산업구조분석으로 바뀌었지만 박 동문은 여전히 제조업의 매력에서 못 헤어나고 있다. 박 동문은 제조업이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한 매력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쪽 업계에서 일하려면 제조업의 묘미를 알아야 합니다. TV나 이런데서 보면 금융이나 최고경영자들이 화려하고 멋있잖아요. 제조업은 이런 맛은 없어요. 하지만 철강에서부터 이걸 가공해서 철판을 만들고, 그위에 다시 2만개의 부품을 조립하고, 이것이 하나의 자동차가 되는 그 과정이 참 재밌습니다. 그리고 제조업은 우리나라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아바타가 자동차 몇 만대를 판 것과 맞먹는 경제효과를 발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아바타를 만들 수 있나요? 못 만들죠. 자동차 산업은 제품생산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대출서비스, 자동차 대여, 수리, 주유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돼 있습니다. 급격한 변화는 없지만 꾸준히 우리나라 산업을 이끄는 것은 제조업입니다.”

자동차를 매개로 방향전환을 한 박 동문은 이공계건 상경계건 인문계건 결국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현명한 자세다.

“어느 학과든지 졸업 후에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딜 가든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대학생 때 과제물 같은 경우 몇 가지 자료를 짜깁기 해서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실력이 아니에요. 결국 중요한 것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남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지난 광우병 사태 당시에도 자신이 생각해서 촛불을 드는 건지, 부화뇌동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서 이것이 정말 내가 결정한 것이지 생각해 보는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많은 경험과 독서가 필요할 것입니다.”



글 : 송재진 취재팀장 
사진 : 김지현 학생기자

학력 및 약력

박 동문은 91년 우리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소음 및 진동 제어관련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 동문은 2006년 귀국 후 LG전자를 거쳐 현재 현대자동차 자동차산업연구소 경영연구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번역서로는 <모노즈쿠리>, , <도요타식 화이트칼라 혁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