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생각한다 63 #자생
2010년 일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내용. 번역
개선에 한계는 없다
- 우찌가와 스스무(관동자동차공업 고문) -
필자가 도요타자동차공업(현 도요타자동차) 입사 후 5년째인 1966년, 최초의 ‘코롤라’가 처음 발매되었다. 마침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이 시작되는 때여서 코롤라는 발매되자 잘 팔렸다. 그러나 중요한 엔진 생산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있는 가미고(上郷) 공장에서 코롤라용 K형 엔진을 만들고 있었는데 라인의 가동률(可動率)은 약 60%로 성과(Performance)가 좋지 않았다.
당시, 가미고 공장은 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가 공장장을 맡고 있었다. 오노는 자판(도요타자동차판매)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시(定時)에 제조 라인을 멈추고 작업자들을 모두 퇴근시켜 버렸다.
자판(自販)에서는 몹시 화를 냈고 신참이었던 필자가 봐도 납득할 수 없었다. 필자는 평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의 동료와 직언을 하며 오노에게 대들었다.
“코롤라가 이만큼 인기가 있는데 왜 잔업을 시키지 않습니까? K형 엔진을 재고
로 가지고 있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의외의 말이 되돌아왔다.
“그렇군, 재고를 가진다면 나도 편하지. 그런데 재고가 왜 필요한지 가르쳐주지 않겠나?”
그 말에 화난 마음과 의문은 일거에 사라지고, 그 대신 자신은 재고를 만들 힘도 없지만, 재고가 있다 한들 이에 대한 대책도 없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이것이 오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약 1주 지나 가미고 공장의 가동률(可動率)은 95%를 상회했다. 오노는 설비의 생산실적을 가동률(稼動率)이 아니라 설비가 움직여야 할 때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가동률(可動率)로 평가했다. 설비를 움직이는 이상, 가동률(可動率)은 100%가 이상적이다. 오노는 그 이상(理想)을 향해 홀로 걸어갔다.
단순한 질문으로 핵심을 찌르다
두 번째의 만남은 내가 막 과장이 되었을 즈음이다. 어느 날 오노로부터 호출이 있었다. “자네가 경제적 로트(Lot) 사이즈에 대한 전문가라며”라고 말했다. 필자가 생산관리부에서 최적 로트사이즈 산출을 잘하고 있다는 소문이 오노에게 전해졌었던 모양이다.
로트 사이즈를 계산해서 들고 가니 오노와 오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스즈무라 기쿠오(鈴村喜久雄)가 질문을 했다.
“기종교체에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자네 계산의 전제이구만?”
“그렇습니다”고 대답하자 갑자기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런데, 자네 올해는 급료가 올랐나?”
“예, 4월에 올랐습니다”
“작년은 어땠나?”
“작년에도 급료가 올랐습니다”
“그런가, 알겠군. 자 그러면, 그 오른 급료분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필자는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회사가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것이 아닌지요?”라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다그쳐 물었다.
“회사는 자네의 급료인상분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겨우 질문의 의미를 알아차리기 시작할 즈음에 핵심을 찔렀다.
“작년, 자네가 계산할 때 기종교체 시간은 얼마였나?”
“올해와 같습니다”
“그런가? 작년과 기종교체 시간이 같은데도 자네의 급료가 올랐단 말인가?”
그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단한 질문으로 가차없이 본질을 따져 물었다. 과장이 막 된 필자는 두 사람의 질문 공세에 패닉 상태가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일해야 함을 그때 비로소 배웠다.
“과학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1974년 필자는 생산조사실로 부서를 옮겼다. 이 생산조사실은 오노가 도요타 생산방식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1970년에 생산관리부 내에 만든 부서이다.
조 후지오 (現 도요타자동차 회장)도 설립 초기부터 이곳 멤버로 오노의 사상이나 여러 수법을 체계화하거나 이론화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오노는 ‘사무직’, ‘기술직’이라는 용어를 싫어했다. 고작 대학 4년 정도의 지식 으로 누구는 사무직, 누구는 기술직이라고 결정하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왜”, “왜”, “왜”로 일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이고, 이런 자세라면 사무직도 기술직이 될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자세야말로 오노가 가장 중요시한 “과학하는 마음”이었다.
오노가 보면 조 후지오는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사무직의 전형이다. 오노는 조 후지오를 통해 ‘과학하는 마음’을 몸으로 익힐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교토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필자도 그로부터 과학하는 마음을 철저하게 배웠다.
“자네들은 무언가를 생각할 때, 어떤 가정을 두고 생각한다. 계산을 할 때에도 무언가를 전제로 하고 계산하고 있다. 만약 전제가 바뀐다면 그 계산은 의미를 잃는다. 제군들이 정말 해야 할 일은 그 전제를 움직이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의심하고, 불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라고 오노는 몇 번이나 말하였다. 전제를 바꾼다는 것은 싸우는 적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왜’를 5회 반복하는 것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질문공세를 당하면, 결국은 현지현물에서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은 현장에만 존재한다. 현장에 가서 진짜 과제와 부딪치지 않는 한, 오노의 “왜”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없었다. “…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하면 오노는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현지현물이 아니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라는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 과학하는 마음의 첫걸음이었다.
“흐름”을 만든다
그러면, 현장에 가서 무엇을 보는가?
오노의 눈은 일의 내용보다 물건이 정체 없이 흐르고 있는가 아닌가에 주목했다.
컨베이어를 움직여 물건을 운반하고 있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흐름(流れ, 자동사)’이 아니고 ‘흘림(流し, 타동사)’이다.
‘흐름(flow)’이란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자동차를 어떤 타이밍에 만들 것인가는 고객이 어떤 자동차를 어떤 타이밍에 사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당연히 어떤 부품이 필요로 하는 타이밍도 마찬가지다. 한 개씩의 부품을 조립해서 한 대의 차가 만들어져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공정을 관장하는 질서는 이렇게 필연적으로 결정된다. 자신들이 마음 내키는대로 이를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신은 세부에 머문다”라는 말이 있다. 흐름은 요컨대 순간순간의 설비의 모션, 사람의 움직임, 재료의 특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오노는 그 순간순간 모든 것이 올바른 질서 하에서 정체없이 흐르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였다.
오노의 일하는 방식은 부사장이 되고 나서도 아주 단순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확인하는 것은 딱 2가지. 전날의 “판매량”과 전날의 “생산량”이었다. 판매량은 ‘필요 수량’이다. 이 필요수량과 실제의 생산량을 보고 오노는 그 날의 행동을 결정했다.
필요수량이 떨어지면 생산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는 자판(自販)을 잘 얼버부리면서 도요타자동차에 감산 지시를 내렸다.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 어려운 오노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증산체제와 감산체제는 표리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생산이란 질서가 유지된다. 그러나, 감산이란 판단은 증산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판매가 줄면 생산을 줄여야 한다. 이런 단순명쾌한 것이 사실은 매우 어렵다.
원가지식이 아닌 “원가의식”
‘구변(口邊)’이란 단어는 ‘말을 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네는 구변이 좋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노가 자주 했던 말이다. 지식만을 가지고 말 잘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원가지식이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사람은 ‘원가의식’을 지닌 사람이다”
누가 코스트 다운(cost down)에 대해 이야기하면 오노는 “자네가 한 말은 원가지식에 불과해”라고 일축해 버렸다.
지식과 의식이 완비되어야 비로소 지혜가 나온다. 오노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의 지혜야말로 무한한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게 하여 코스트 절감을 이루거나 품질 향상을 이루는 데에는 결코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고도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도요타 생산방식의 근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환경문제에서도 돈을 들이지 않는다면 지구온난화를 방지할 수 없다는 발상을 들었다면 오노는 단호히 “그것은 틀렸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오노의 훈도(薰陶)를 받은 사람들은 오노의 제조업(모노즈쿠리) 철학이 몸에 베어있다. 필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관동자동차공업의 사장을 역임하던 때의 일이다.
“사장님 이제 더 이상 원가절감(cost down)은 무리입니다”라고 부하직원이 말했다.
“어째서이지? 원가가 제로(Zero)가 되었나?”
“무슨 말씀이신지? 원가는 있습니다”
“자넨 원가가 있는데도 원가를 줄일 수 없다고 하는데, 어찌 그런 당치않은 말을 할 수 있는가?”
원가가 있는 한 줄일 수 있다. 결국 개선에 한계는 없고 사람의 지혜는 무한하다. 오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하나로 요약하면 결국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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