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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폭스바겐의 소프트웨어 조작

(자생 179)(VW의 어둠2편) VW의 탄생

by 자동차생각_모듈러설계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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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생각한다 #VW의어둠

읽고 있는 책, <VW의 어둠> Ch2.의 주요 내용 요약입니다.

(자생 179)(VW의 어둠2편) VW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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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벤츠가 가솔린 엔진을 처음 만들었지만 자동차 보급은 헨리 포드의 미국이 먼저였다.

- 1920년부터 독일은 국가의 위신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자동차를 보급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이 아이디어를 채택에서 국민차 보급을 제창하게 되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차량 보급을 실용적인 측면보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생각했다. 아우토반을 만들어 군사용도로 활용하고자 하였고, 자동차 보급이라는 이슈로 군사목적을 감추고 싶어했다.

- VW(폭스바겐)은 1937년 히틀러의 위와 같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회사이다.

- 히틀러는 레이싱카를 설계하는 포르쉐에게 국민차 설계를 요청 하였다. (포르쉐는 무학이었으나, 추후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계속 포르쉐 박사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 당시 기존 자동차 회사는 경쟁사가 하나 더 생긴다는 관점에서 히틀러의 정책을 반기지 않았다. 포르쉐는 이런 방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히틀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 국민차로 설계된 비틀이 양산되기 직전인 1940년 9월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폭스바겐 공장은 군수용으로 전환된다. 즉, 히틀러는 국민차 보급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국민차가 보급된 것도 아니었다.

- 따라서, 비틀(beetle)이라는 차가 만들어졌지만, 실제 간부용으로 한정적 생산했으며,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비로소 국민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 폭스바겐의 작업자는 폴란드, 유대인 등의 해외노동자를 고용해서 전체 작업자의 80%에 달한다. 그 중 상당수는 아우슈비츠에서 연행되어 온 사람이었다. 해외노동자 비율은 80%로 다른 독일회사(BMW, 다임러, 지멘스 등)의 30%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 2차세계대전이후 영국의 자국 군대가 사용할 차량의 수리와 함께, 독일의 생활 안정, 그리고, 혹시 폭스바겐 공장의 설비가 소련에 반출되는 것을 염려하여 폭스바겐 공장을 재가동 시킨다.

- 1945년 12월 본격적으로 공장이 가동되어 1946년 3월까지 1,000대의 차량이 생산된다. 동독과의 국경선과 가까운 위치에 공장이 있었기에 종업원에게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폭스바겐 공장이 민주화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사진) 포르쉐와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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