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포르쉐 일족과 폭스바겐
(4. 폭스바겐의 어둠 ch3장 뒷부분을 요약정리했습니다.), 21년 1월 2일 13시 입력
- 아이반 허스트(Ivan Hirst)는 오펠(GM의 독일 자회사, 당시 폭스바겐보다 규모가 큰 회사였음)에서 하인리히 노드호프(Heinrich Nordhoff)를 리쿠르트했다. 그는 공장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잘 아는 매니저였다.
- 1948년 영국인 최고감독관인 허스트가 물러나고, 노드호프는 1948년 1월부터 20년간 VW의 최고경영자의 역할을 했다.
- 서독의 통화 걔혁으로 마르크화에 대한 안정적인 기대, 경제 부흥이 시작되면서 폭스바겐의 성장 또한 눈부시게 일어난다.
- 페리디난트 포르쉐(F. 포르쉐)는 1951년 75세에 타계했는데, 그 당시 독일의 도로에는 폭스바겐 차로 가득차 있었다.
- 포르쉐 일족과 폭스바겐과의 관계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는 딸인 <루이스 포르쉐>와 아들 <페리 포르쉐>가 있고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와 친손자인 <폴프강 포르쉐>가 있다.
- 아들 <페리 포르쉐>는 부친의 설계사무실을 이어 받았고, 비틀의 설계료 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영국 점령군 하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새로운 독일 최고 경영자인 노드호프(Nordhoff)는 포르쉐사에게 매출이 50만 독일 마르크까지는 1프로 지급하고, 그 이상이면 차량 한대당 1마르크를 특허사용료로 지불하기로 계약을 하고 1949년부터 지급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포르쉐 일족은 폭스바겐의 오스트리아 판매권을 받았다. 당시 판매권이라는 개념이 중시 되지 않을 때였다. 딸인 <루이스 포르쉐>는 이후 유럽 최대의 폭스바겐 딜러 네트워크를 만들다.
- 1959년 VW의 노드호프(Nordhoff)의 22살인 딸은 포르쉐 창업자의 외손자인 <에른스트 피에히>와 결혼한다.
- 폭스바겐은 연구소가 없었고 차량 개발을 계속 포르쉐社 에 의존했고, 포르쉐사는 포르쉐 365와 911을 만들어서 스포츠카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 특히 미국에서 포르쉐 차량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반항의 아이콘인 <제임스 딘>이 포르쉐 550(356의 스포츠버전)을 타고 가다가 사고로 사망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이후 수십년이 지나, 포르쉐 일족인 손자들이 폭스바겐의 경영의 지배자로 다시 나타난다,
<사진1> 포르쉐 가계도
<사진2> 제임스 딘과 포르쉐
<사진3> 하인리히 노드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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