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비틀 이후 모델 부재 속의 피에히 (VW의 어둠 ch5 _2번째).
- 1972년 2월에 비틀은 누적 판매에 있어 천5백만대(15,007,034대)를 팔어 포드의 T카를 앞지른다.
- 하지만, 1972년 VW의 판매대수가 14% 떨어졌고, 그중 120만대가 비틀(beetle)이었음. 너무 한 모델에 의존도가 높았다. 미국에서도 판매대수가 1970년 파크인 57만대였지만, 그중 1/3이 비틀이었고, 1972년에 총판매대수가 48.6만대로 떨어졌다.
- 별다른 후속 차종이 없는 상태였으며, 포르쉐社는 <포르쉐914>차종을 아우디(VW의 계열사)와 공동개발하고 아우디 공장에서 만들었고 이것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 이름과 외부 디자인은 포르쉐였지만, 실제는 아우디의 부품을 많이 사용한 차였다. 하지만, 고객은 포르쉐로 인식했다. 포르쉐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키면서 아우디와 부품을 공용화하면 큰 이익이 낼 수 있음을 알았다. (부품 공용화 전략의 서막)
- VW은 자기만족을 하고 있었고, 비틀(Beetle)을 대체할 만한 차가 없었다.
- 포르쉐社가 계속 VW의 사실상(de facto)의 연구소 역할을 했고, 비록 포르쉐 일족(친가 외가 모두)은 VW에 대한 지분이 없었지만, 그들의 부의 원천이 되고 있었다. 포르쉐의 지분 대부분은 창업자의 딸(Louise Piech)와 아들(Ferry Porsche)가 가지고 있었다.
- 비틀 이후 포르쉐 社가 VW을 위해 만든 차량 디자인은 대부분 실패했다.
- 포르쉐社의 스포츠카인 <914>가 성공을 하였고, 이 차는 아우디 공장에서 만들어 졌기에 서로 간의 협조가 중요함을 배웠다.
- 아우디로 자리를 옮긴 <페르디난트 피에히(외손자)>가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Audi 100> 이라는 차량을 미국 emission 에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 1970년, 미국의 대기정화법(Clean Air Act)는 1975년부터 만들어지는 차에 대하여 일산화탄소(carbon monoxide)와 탄화수소(bydrocarbons)를 90% , 1976년까지 질소산화물(Nitrogen Oxide)를 90% 줄이는 것이었다.
- 당시 유럽의 규제는 미국과 같이 엄격하지 않았고, 아우디 100차량은 도저히 달성히 불가능했다.
- <피에히>는 미국 정부에 한시적 판매 허가를 받고 6개월만에 연료를 실린더에 직접 분사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규제를 통과했다.
- <피에히>는 이 공로로 1973년에 아우디에 테스트 총 책임자로 승진하고 이후 다시 개발총책임자가 된다.
<사진1> 아우디 100과 피에히
<사진2> 포르쉐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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