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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생각한다.

(폭스바겐의 어둠 6장 ) 187 로페즈 사건

by 자동차생각_모듈러설계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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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의 어둠 6장 ) 

187 로페즈 사건

- 1993년 <피에히>가 CEO에 취임한 당시 폭스바겐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회사가 성장할 것이라고 보았던 전임자 <칼 한>은 인력을 많이 뽑아, 전세계 종업원 27.4만명, 독일에만 12만명이었다.

- 미국에는 일본차의 판매 영향으로 VW의 시장 순위는 15위까지 밀려났다. 결국 1993년 경기침체와 함께 19억 마르크(12억 달러)의 적자가 발생하며 도산한다는 소문까지 나 돌았다.

- <피에히>와 같은 야심가에게는 오히려 절호의 찬스였다. 그는 일본식 생산방식, 즉 Just In Time을 도입한다.

- VW은 독일내 Mosel과 스페인의 Martorell 지역의 신공장에 일본식 생산방식 개선(카이젠)을 도입한다. 작업자가 참가하는 품질 향상, 작업의 낭비제거, 작은 효율이 합쳐지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낸다.

- 유럽과 미국에 의존하는 포르쉐社도 경기 침체에 영향을 받아 3년 연속 적자였다. 1992년 포르쉐와 피에히 일족의 지지를 받고 CEO가 된 비데킹(Wendelin Wiedeking)은 제조 전문가로, 그의 지시로 도요타자동차 출신의 매니저를 뽑아서 공장 합리화를 진행하여 생산효율을 향상한다. 종업원 20%에 해당하는 1850명의 인원을 줄이는데 성공하면서 1996년 흑자로 전환한다.

- 흑자에 공헌한 또 다른 하나는 <플랫폼 전략> 이라는 것으로 여러 차종에 부품을 공통으로 사용하여 규모의 경제에 의힌 비용절감이었다.

- 그리고 폭스바겐은 차량은 견실하지만 재미가 부족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피에히>는 이 부분을 해결할 적임자였다. 아무리 코스트 절감을 했다고 해도 제품의 매력도가 떨어지면 아무도 차를 구입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 차량의 루프 부분에 레이저 용접이 가능하게 되면서 차량을 박스형태에서 유선형 변경했다.

- <피에히>는 부품과 부품사이의 단차 (gap의 크기)에 집착했다. 갭(gap)이 작으면 외관이 멋있어 보이고, 모든 조직이 부품의 칫수에 집중하도록 유지 시킬 수 있었다.

- <피에히> 덕분에 국민차로 대중에게 고급차의 분위기와 성능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예를 들어 골프의 GTI 버전은 <가난한 사람의 BMW>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였다.

- 이런 노력으로 <피에히>가 취임한 5년차인 1997년에 <파사트> 한 대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31시간에서 22시간으로 단축되었고, 1994년에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였고, 97년에 이익이 10억 마르크(6.5억달러)가 되었다.

-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영의 방식이 바뀌었다. 1982년 CEO가 된 칼 한(Carl Hahn)은 그의 전임 CEO였던 하인츠 노르도프(Heinz Nordhoff)의 군국주의적(militaristic management, 칼 한의 표현)을 완화시키고자 했다. 과거 회의는 단지 지시하고 따르기만 하는 형식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피에히>는 경영 스타일을 다시 노르도프(Nordhoff) 시대로 되돌렸다. 피에히의 결단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경영자는 거의 없었다.

- 1992년 GM은 770만대를 생산하는 최대의 회사로 VW은 350만대 수준이었다. 유럽에서는 GM의 오펠이 28.9만대, VW이 37.2만대로 리드하고 있었다.

- <피에히>는 정식으로 VW의 CEO가 되기 전인 1992년에 GM의 구매 담당자인 로페스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접촉한다. 로페스는 당시 서플라이어로부터 가격을 인하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자동차 업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

- 로페스는 측근에게 과일과 전립곡물을 먹게 하고 고기는 조금만 먹도록 했으며, 와인 한잔 이외의 알코올은 금지시킬 정도였다. 피에히는 극한의 수준으로 까지 일을 시키는 <로페스>에 감동해서 그를 스카우트한다.

- 로페스는 그 뿐만 아니라 7명과 같이 이직하면서 GM의 서류 20상자분의 기밀 문서를 들고 나오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GM이 소송을 하게 된다.

- <피에히>는 GM의 소송을 원만하게 합의를 하기 보다는 전쟁으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방어하라>고 지시한다. 여기서 <모든 법적 수단>이 아니라 그냥 <모든 수단>임에 주의 할 필요가 있다.

- GM와 VW의 법적 대결은 수년간에 걸쳐 계속 되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독일 사람들이 VW을 지지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오히려 GM의 오펠 자회사의 차량 판매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 결국 서로의 체면을 살리는 수준에서 GM이 합의를 하게 된다. (합의안에는 로페스가 GM을 퇴직까지 포함)

- 이후 GM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계속 떨어져서

1992년 VW 17.5%, GM 12.5%,

2000년 VW 18.7%, GM 10.8%,

2003년 VW 24.6%, GM 7.1% 로 변했다.

- 이 결과는 <로페스>사건만에 의한 결과는 아니다. 미국 GM에서 독일의 오펠로 보낸 경영간부는 엔지어링을 중시하는 독일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독일인 특유의 고객 니즈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경영사이드와 작업자간에 언제나 불협화음이 있었다.

- <피에히>는 <로페스>와 함께 온 GM 사람을 승진 시키는 등 별다른 반성을 하지 않았고, 이 사건이 VW에 근무하는 경영진들에게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하나의 시그널로 작동한다.

<사진1> 로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