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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우리의 희망,이영훈

by 자동차생각_모듈러설계 2017.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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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우리의 희망
- 자유교육포럼의 출범에 부쳐-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몇 년 전이다. 서울대학교 경력개발센터에 물었다. “올해의 학부 졸업생 가운
데 해외에서 취직한 학생이 몇 명입니까” 직원은 통계가 없다고 대답한다. “한
100명은 됩니까.” “어딜요.” “그럼 한 50명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30
명은 되겠지요.”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조바심이 났다. “10명은
되겠지요.” “박사과정 졸업생이 해외로 포스닥 나간 것까지 합하면 그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렇다. 이 최고 학부의 졸업생들은 이 나라 안에서의 엘리트일
뿐이다. 머리 좋고 성품 좋아 어릴 적부터 될성부른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장
차 훌륭한 인물이 되라고, 민족과 국가의 동량이 되라고 칭찬과 격려를 받고
자란 아이들이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고 학부에 입학하였다. 그렇지
만 어디까지나 닫힌 나라 안에서의 엘리트일 뿐이다. 우물 안 개구리이다. 입
학의 순간은 판사·검사·변호사로, 교수·교사로, 공무원으로, 대기업·공기업·은
행·증권회사의 사원으로,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취직하기 위한 또 하나의

치열한 경쟁의 출발일 뿐이다. 성공한 아이들은 소수다. 대다수는 처음부터,
또는 중도에 실패한 다음, 일생을 좌절감으로 산다. 좁아터진 닫힌 나라 안에
서의 경쟁이니 당연한 일이다. 어디 있든 맨 위층에 있지 않으니 불만이다. 아
래를 돌아보면 지방에, 중소기업에 일손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에 우수 인력이 가질 않는다.
대기업은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고 중소기업은 닫힌 공간에서 제살 깍기 다툼
을 벌인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도 마찬가지이다. 죄다 폐쇄적 일국주의에 매몰
된 출세 교육의 자업자득이다. 다중의 좌절감은 언젠가 집단의 분노로 폭발할
것이다. 닫힌 나라가 조만간 실패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적어도 그 3분지 1이 일본,
중국, 대만, 호주, 홍콩, 싱가폴,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직장을 구하
는 그 날을 꿈꾼다. 거꾸로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는 사람의 3분지 1은 아시아

각국에서 몰려온 젊은이들이다. 인종과 국적은 다르지만 모두가 하나이다. 브
뤼셀과 코펜하겐의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한 다음, 절반이 런던과 파리를 비롯
한 유럽 각지에 취직한다. 어릴 적부터 그럴 요량이었고, 그에 걸 맞는 교육을
받았다. 넓게 트인 시장에서는 더 올라가지 못해서 불만인 자리는 없다. 모두
가 능력껏 제하기 나름이다. 넓은 국제사회에는 호남이니 영남이니 지역 갈등
은 없다. 계층 갈등도 최소화한다. 갈등이란 갈등은 죄다 국제적으로 증발한
다. 모두가 자유이성의 신사들이다. 이 나라도 그런 열린사회로 나아가야 한
다. 그것이 나의 꿈이고 우리의 희망이다. 일찍이 복거일 선배가 주창한 영어
공영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영어만이 아니다. 아이들에
게 일본어와 중국어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적어도 2
∼3개 외국어는 자국어만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국제인이어야 한다. 그래야 일
본으로, 중국으로, 아시아 각지로 진출할 수 있다. 그래야 아시아 각지의 고급
인력이 한국으로 몰려 올 수 있다.


나는 자유롭게 통합된 동아시아를 꿈꾼다. 내 당대에는 실현을 보지 못할 꿈이
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그런 꿈으로 버티고 있다. 1990년까지만 해도 이 나라
에는 그런 꿈이 있었다. 동년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
설하였다. “실은 오늘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
지난 일을 되새겨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음 세기에 동경
을 출발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현해탄의 해저터널을 가로질러 서울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북경과 모스코바로, 파리와 런던으로 대륙을 잇고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우정 어린 동반여행을 하는 시대를 우리가 만들어 갑시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듣는 이들은 감격하였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 공공하게
울려 펴진 자유이성의 꿈은 어디에 가고 없는가.


그 연설이 주효했는지, 1992년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는 일본에서
출발하여 터키에 이르는 32개국을 횡단하는 장장 14만km의 아시안하이웨이
(Asian Highway, AH)를 건설하자고 제안하였다. 2003년 이 국제적 프로젝트
를 위한 아시아 23개 국의 정부간협정이 체결되었다. 한국정부도 빠질세라 이
협정에 서명하였다. 그리고선 경부고속도로 곳곳에 이 도로가 AH1호선이란 간
판을 걸었다. AH1호선은 일본 도쿄에서 출발하여 후쿠오카, 한국의 부산과 서
울, 북한의 평양, 중국의 베이징과 광둥을 거쳐 하노이, 프놈펜, 방콕, 양곤,
뉴델리를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을 종착지로 한다. 이 국제적 대역사의 실질적
출발은 한일 해저터널의 굴착이다. 일본정부는 이 국제적 약속에 따라 2009년

큐수의 카라츠와 쓰시마에 해저터널을 위한 조사사갱을 건설하였다. 그렇지만
한국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동은커녕, 노무현정부는 일본과의 역사전쟁
을 포고하였다.


지금쯤 이 해저터널이 뚫렸다고 생각해 보라. AH1호선이 도쿄, 후쿠오카, 부
산, 서울을 지나 평양을 통과하고 베이징에 도달하여 상하이, 광둥에 도달해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렇게 동아 4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었다고 가정
해 보라.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에도 그리는 민족
통일이 아닌가. 자유롭게 오고 가면 그것이 통일이지 꼭 두 나라를 합쳐야 통
일인가. 되돌아보면 80년 전 일제가 강압으로 건설하고자 했던 대동아공영권
이 아닌가. 그 새로운 공영권의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제국의 폭력이
아니라 자유, 개방, 시장의 원리가 그 동력이다. 이 넓게 통합된 국제시장에서
서로의 기억이 다른 역사를 둘러싼 분쟁 따위는 없다. 일방이 주먹을 흔들면서
타방에 사과를 거듭 요구하는 부족주의 따위도 없다. 청년실업도 없고, 일자리
부족도 없고, 지역갈등 따위는 더욱 없다. 당초 이 국제적 프로젝트를 제안했
던 한국정부여, 이 꿈을 기억이나 하시는지요. 역대 대통령들이여, 어찌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걸어갈 희망과 번영의 그 큰 길을, 대한민국이 주역이 될
동아공영의 그 길을 그토록 허망하게 버리셨나요. 어찌하여 국제사회가 동참하
는 문명적 통일의 길을 우리민족끼리 민족경제에 입각하여 통일하자는 부족주
의로 후퇴시키고 말았던가요. 이 가없는 협량함과 옹졸함은 대체 어디에 기원
하는 것일까요.


몇 년 전 3월 초, 교보문고에 들러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1학기의 도덕과와
사회과 교과서를 모조리 구입하였다. 이 같은 의문을 이기지 못해서이다. 9월
초에 다시 들러 2학기 교과서마저 모으지 못한 게으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교과서들은 나의 풀리지 않은 의문을 훌륭하게 해소하였다. 그 모든 꿈은 애당
초 환상이었다. 역대정부가 꿈을 접을 때, 아니 기억조차 하지 못할 때, 다중
의 국민이 그런 정치를 지지하도록 교과서는 가르치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
서만 소개한다. 1학년 『바른생활』은 내 일은 내가 챙기기, 바른 자세, 골고루
먹기, 가족의 소중함, 사이좋은 친구를 가르친다. 2학년이 되면 계획의 실천,
단정한 옷차림, 이웃 간의 예절, 공공질서, 정리정돈을 배운다. 3학년의 『생
활의 길잡이』는 정직, 자주, 절제, 책임, 협동, 효도, 준법을 강조하며, 가정과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가르친다. 나
라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호하는 울타리다. 그래서 나라의 상징인 애국가,

태극기, 무궁화, 국경일을 소중히 여기자고 한다. 4학년 교과서는 정직, 용기,
성실의 덕목을 깨우친다. 소개되는 위인은 이순신, 신사임당, 토스토에브스키
이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
는 길은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소중히 지키는 것
이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나라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라에 전쟁이 나면
우리는 불행해진다는 전후맥락이 닿지 않은 가르침도 슬그머니 끼워져 있다.
5학년 교과서도 거듭 성실, 정직, 최선, 관용, 노력, 반성, 계획, 실천, 우정,
봉사, 화해, 양보, 질서, 협동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다. 드디어 통일교육이 시
작된다. 우리는 하나이다. 진정한 통일이란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북
한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한다. 마지막 6학년
교과서는 꿈, 자긍심, 성실, 근면, 희망, 책임, 도전, 용기, 봉사, 배려, 법과 규
칙, 정의, 사랑, 자비, 용서, 평화, 비폭력의 미덕을 종합적으로 강조한 다음,
통일 한국을 위한 바람직한 방안을 다시 한 번 가르친다. 전쟁과 힘으로는 통
일할 수 없다고 하면서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노력한 일을 조사해 보라고
지시한다.



나는 교과서들이 우리 조상이 어린 시절에 읽은 『소학』의 현대판이라는 느낌
을 가졌다. 우리 조상이 알지 못했던, 그래서 조선왕조를 망하게 했던, 20세기
에 들어 일본과 미국을 통해 주입되었던, 그렇지만 한국인들이 주체적 학습과
실천으로 지금의 그런대로 볼만한 현실을 만들 수 있게 했던, 흔히들 근대라고
부르는 문명의 핵심 요소와 원리를 통째로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
라 개인의 자유와 독립, 그러한 이념과 원리에 기초한 정치적 통합으로서 국가
는 교과서 어디에도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교과서 맨 앞장에 무미건조하
게 실린 ‘국기의 대한 맹세’를 제외한 어느 군데서도 자유라는 두 글자는 보이
지 않는다. 어느 군데서도 대한민국의 네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이 나라는 불쌍하게도 이름이 없다. 나라의 기초 이념이 무엇인지, 언제 어떻
게 세워졌는지 최소한의 설명조차 없다. 그저 애국가, 태극기, 무궁화와 같은
상징으로만 감각되는, 이순신 등 위인의 자취로만 이어지는, 전통과 문화에 대
한 애착으로만 감각되는,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
겨지는, 그래서 전쟁을 벌여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해서는 안 되는 도덕적 실
체로 규정되는, 북한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동포애의 단위로 훈육되는 것
이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대한민국이다.


요컨대 자유와 독립의 이념,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 개인, 그들의 정치적 통합

으로서 국가가 배제된 순전한 민족교육이다. 정직, 성실, 책임, 용기, 관용, 전
통, 상징, 애국심으로 스스로를 단련한 아이들은 결국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완성될 존재이다. 근대문명의 핵심은 개인이다. 인류는 근대에 이르러 개인을
발견하고, 국가를 이룩하였다. 그러니까 이들 교과서는 근대를 오롯이 결여하
고 있다. 근대 따위는 가라. 우리는 전통에 입각한 탈근대를, 곧 민족을 지향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정부가 아이들에게 보급한 초등학교 교과서의 속살이다.
이러한 초등교육이 중·고등학교 6년 과정으로까지 뻗쳐 있다. 중학교 3년 과정
에서는 고조선에서 출발하는 민족의 역사가 교육된다. 고등학교에 이르면 우리
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가 피력되는데, 민족주의가 그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
다. 지난 20세기에 걸친 민족의 고난과 분단은 일제의 침략과 지배, 그에 협조
한 근대문명 세력, 미국에 의한 해방, 친일·친미·반민족세력에 의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이어지는 외세의존의 장기집권과 부정부패 세력의 탓으로 돌려
진다. 민족의 진정한 역사는 항일민족투쟁, 4·19혁명, 민주화운동으로 그 계보
가 이어지는, 결국 민족통일로 완성될, 민족·민주혁명의 노선이다. 교과서가 때
로는 직설법으로 때로는 은유법으로 가르치는 이 같은 혁명의 역사에 학생들
은 한숨과 분노에 가득 찬 민족의 일원으로 양성된다.


이상이 교육 현장의 민낯이다. 교과서를 보면 왜 우리의 역대정부가 AH1 프
로젝트를 대수롭잖게 팽개쳤는지, 동아공영의 길을 외면했는지, 국제사회가 참
가하는 통일의 길을 봉쇄했는지, 엉뚱하게 역사전쟁을 선포하고 말았는지, 나
아가 친일·독재의 구호로 국민 분열을 조장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
다. 한 마디로 자유와 독립 정신에 기반을 둔 개인의 결여이다. 그 연장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개방적 국제사회의 결여이다. 그 텅 빈 공간에 민족주의가 도
도한 물줄기로 흐르고 있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이다. 어찌할 것
인가. 그냥 강둑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관망할 것인가. 지난 역사에서는 터지
는 가슴의 아픔으로 역사의 흐름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던 선배들이 있었
다. 그렇지만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그 날을 위해 분골쇄신한 자유와 독립
정신의 선배들도 있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그들의 각고진력으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 그리고선 지난 67년간의 번영과 성취가 있었다. 그것을 내가 모를
진대 어찌 강둑에 앉아 구경만 하겠는가. 세태의 혼탁함에 몸을 더럽힐 용기가
없다면 꿈을 꿀 자격조차 없다.


오늘 출범하는 자유교육포럼의 앞날에 큰 성취가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역
사를 자유와 독립 이념의 큰 대양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 닫히고 분열된 나라

를 넓게 펼쳐진 국제사회로 열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선봉대로 나
설 교육혁명의 과제이다. 지속적 성장, 양질의 일자리, 행복한 노후, 계층 화
합, 지역 통합, 정신문화의 고양, 나아가 남북통일도 그 속에서야 성취되는 문
명사적 과제들이다. 뛰어넘지 않으면 무한하게 추락할 골짜기에 다 달았다. 뛰
어넘어라, 자유교육의 언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