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16일
평양 넘어 미국에서 GM의 경영부진 소식이 많이 들려 오고 있습니다. GM뿐만 아니라, 포드등 기계관련 산업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사실 공작기계산업분야는 일본기업에 흡수되지 않은 미국자본의 회사가 아직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입니다. (참조 : 변용식 칼럼 : GM의 추억: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512/200512010388.html
이와 반대로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 전자회사의 경영이 좋지 않지요. 최근 경영부진을 이유로 일본 신문을 장식한 회사가 산요전기(三洋電機, SANYO Electric Co.,Ltd.)입니다. 11월 22일 S&P사의 신용등급이 2단계 떨어져 투기적수준인 BB이며, 창업가문출신인 井植敏代 가 결국 경영상의 책임을 지고 물러 난다고 합니다. 11월18일에는 종합가전분야를 포기한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최고수준의 경영성과를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1969 년에 “삼성산요전기” 라는 합작회사를 통해 사부님인 산요에게서 라디오와 TV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면서 전자산업을 시작했기에 사실 한국사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참고 : 월간조선 2005년 02월호기사, 삼성전자는 [스승]소니를 이렇게 이겼다.
(좌측그림: 일본가전시대의 문을 열었던 산요세탁기)
산요는 일본에서 소위 백색가전의 첫문을 열은 회사입니다. 일본에서는 “삼종의 신기(三種の神器)” 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원래는 일본왕을 표시하는 세가지의 보물인 거울, 옥, 검 [정확히 말하면, 八咫鏡(やたのかがみ), 八尺瓊勾玉(やさかにのまがたま), 天叢雲?(あまのむらくものつるぎ)] 을 가르키는 말로, 일본이 성장기에 진입하는 시기인 1950년대 후반의 일반가정의 가정생활을 변화시킨 세탁기,냉장고, 흑백테레비젼을 삼종의신기라고 표현합니다. 고도성장기에는 칼라(Color) 테레비젼, 에어콘(일본식으로는 쿨러 Cooler), 자동차(Car) 를 가르켜 “3C”라고 칭하다가, 제조업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지금은 디지털 가전중 액정/플라즈마TV, DVD레코더, 디지털 카메라을 다시 “新 삼종의 신기”의 시대로 진입했습니다만, 이 “삼종의 신기”중 첫 출발점이 산요의 세탁기입니다.
http://www.nhk.or.jp/projectx/92/index.htm (NHK방송에서 세탁기 개발과정을 술회하고 있는 모습, 뒷면 중앙의 사진이 산요전기 창업자 井植歲男)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세탁기는 1930년에 토시바(東芝)의 세탁기입니다만, 현재와 같은 식의 세탁기를 개발해서(1953년) 低價로 판매하기 시작한것은 산요전기가 처음이며, NHK(일본공영방송)의 프로젝트 X 라는 프로에서三洋전기의 세탁기를 개발스토리를 소개하며 산요세탁기가 발매한 1954년을 일본家電의 元年이라고 하더군요. 일본에서 NHK가 테레비방송을 시작한 1953년에 수신계약자수가 866세대 뿐이었고, 전기제품이야 라디오, 선풍기, 전등 수준뿐인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세탁기라는 여성을 위한 제품 개발을 시작한것은 산요전기를 창업한 井植歲男(이우에 토시오; いうえ としお)입니다. 井植歲男는17살의 나이에 그의 자형(?兄)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당시23세)의 권유에 의해 마쓰시타전기의 영업을 담당하는 창업멤버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후 연합군사령부에 의해, 전시중 군부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가, 1947년에 전시에 포탄을 만들었고, 전후에 부도가 났던 마쓰시타금속공장을 인수하면서 재기를 시작한것이 현재의 산요전기의 효시입니다. 이때가 그의 나이 48세.
1950년대들어서면서, 일본은 한국에서의 625사변 덕분에 경기가 무척 좋아졌고, 이때 산요는 라디오생산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이에 힘입어 두번째 작품으로 세탁기 개발을 시작합니다. 당시 일반가정의 전기사용량이 대충 300-500와트(watt)인데 당시 세탁기 한대의 전력소요량이 400W 정도였는지라, 영업용의 세탁기뿐이었지요. 일반 가정집에서의 여성의 세탁량이 일년에 코끼리 한마리의 무게와 같은 정도라고 합니다. 역시 영업출신의 井植歲男였는지라, 값싸고, 낮은 소비전력의 세탁기에 대한 니즈(Needs)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이 세탁기를 개발하고, 판매할때도 최고의 영업맨들의 역량을 발휘합니다. 지금이야, 여성상위시대이지만, 1950년대에 빨래는 집에서 여자가 하는 일이라며, 사치품정도로 취급받자, 井植歲男가 영업맨들에게 이렇게 교육합니다. 여자가 빨래를 하는데 한시간에150칼로리가 소요되고, 이것을 보충할려면 계란2개를 먹어야 하는데, 이 가격이 15엔, 일년을 계산하면 10950엔, 5인가족이면 10만엔 규모. 하지만, 산요세탁기는 2만엔이라며 선전을 하지요. ( 여성에게 계란 2개먹이는것보다 세탁기 하나 구입하는것이 더 싸다는 논리인데..지금 이런식으로 이야기 했다가는 난리나겠지요 '(^_^)'
아무튼 일본의 백색가전은 1950년대 후반 이렇게 산요에 의해서 문이 열렸고, 그 이후로 흑백테레비젼, 냉장고가 1960년대 초에 등장하여 삼종의 신기인 가전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50년이 지난 2005년도는 그 문을 처음 열었던 산요전기가 조용히 일본의 종합가전업계에서 그 이름을 감추는 해로 기억되겠지요.
사진 출처 : NHK방송의 프로젝트X 라는 프로에서 산요의 세탁기를 시연하는 사회자.
http://www.nhk.or.jp/projectx/92/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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